축산업에도 알파고가 필요하다
축산업에도 알파고가 필요하다
  • 농업정보신문
  • 승인 2017.11.28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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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축산과학원 낙농과 

박성민 농업연구사

 2037년, 대한민국. 냉장고에 우유가 떨어지자 가족 구성원의 우유 소비 패턴을 분석한 냉장고가 자동으로 우유를 주문한다. 각 가정에서 모인 우유 구매 요청은 낙농 빅데이터 센터에서 취합되고 그 결과는 지역 단위 낙농 조합으로 분배된다. 지역 낙농 조합에서는 오늘의 우유 주문량을 바탕으로 우유 소요량을 예측하고 농가에 할당한다. 농장에서는 보유한 착유우의 산유 능력을 고려하여 적정량의 사료를 공급한다. 개체별 우유 생산량 예측 시스템은 농장에서 생산되는 생체정보 등을 바탕으로 목표 생산량과 실제 생산량과의 차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의 알고리즘을 수정한다.

 이러한 공상과학 영화 같은 일들은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 대부분 구현이 가능하다. 다만 구축비용 대비 효율, 시스템 안정성 등의 문제가 뒤따른다. 또한, 가축에게 필요한 만큼의 사료만을 먹여야 하는데 가축이 얼마나 먹을 지를 예측하기도 어렵다. 복잡한 반추영양학 이론을 들지 않더라도 그냥 그날따라 식욕이 없어 사료를 먹지 않을 수 있다. 필요한 만큼의 사료만을 먹이는데 성공했다 할지라도 그 사료가 체내에서 얼마만큼 소화될 지를 예측하는 것 또한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전 세계 연구자들은 앞 다투어 사료 섭취량과 체내 소화율을 예측하여 사양표준 기준을 발표한다. 현재 반추 동물을 대상으로 한 세계 최고 수준의 예측 프로그램 정확도는 대략 40% 초반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정도의 예측력으로 무인화 축사의 안정적 운영이 가능할까? 축산 스마트팜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예측 정확도를 획기적으로 높이는 일이 시급하다. 이것이 바로 축산업에 알파고가 필요한 이유이다.

 다행인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알파고는 스스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하사비스 최고경영자는 알파고의 바둑계 은퇴를 선언하면서 앞으로 알파고는 새로운 치료법을 찾거나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등 과학자들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알고리즘을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알파고는 점점 우리 곁으로 가까워지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알파고는 껍데기일 뿐, 알맹이는 따로 있다. 바로 데이터이다. 알파고는 대식가라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를 기대하려면 엄청난 양의 데이터가 필요하다. 딥마인드가 바둑을 선택한 이유는 그 동안 바둑이 컴퓨터가 인간을 이길 수 없는 벽처럼 여겨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수천 년 역사에서 비롯된 엄청난 빅데이터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의 대결 전에 16만여 건의 기보를 학습했듯이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국내 환경에서의 축산 빅데이터가 필요하다.

 이미 유럽의 축산 선진국들은 최신 제품을 판매하면서 성능 개선이라는 미명하에 국내를 비롯한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모든 데이터를 자연스럽게 본국으로 회수하고 있다. 빅데이터 선점 전쟁이 이미 시작된 것이다. 이것이 외국산 제품을 국산화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우리 정부는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대비하여 스마트팜 구축을 국정과제로 삼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에서는 보유 젖소를 대상으로 365일 상시 데이터 수집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2018년부터 한국형 낙농 스마트팜 시범 모델 개발을 위한 연구를 수행하고, 2021년부터는 국내 환경에서의 젖소 빅데이터 구축을 위해 지역 거점 농장으로 데이터 수집 대상을 확대하여 자료 확보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진짜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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