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 불신 극에 달했다
농민 불신 극에 달했다
  • 이나래 기자
  • 승인 2016.12.12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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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꾸 농가들이 무임승차를 한다고 하는데, 70세 이상 고령농민들이 다 자조금을 낼 수 있습니까?”

 “이런 식의 발언을 계속 하면 문제가 안 풀립니다. 발전적인 발언 부탁드립니다.”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농산물 자조금 토론회’ 막바지에 짧은 설전(?)이벌어졌다.

 현재 임의 자조금제로 운영되고 있는 23개 농산물 품목의 의무 자조금제 전환을 위해 정부와 생산자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토론하는 자리였다.

 전영남 한국양파산업연합회장은 70세 이상 고령농들마저 의무 자조금을 내야 한다는 것에 대해 난색을 표시했다. 전 회장의 언성이 다소 높아지자 정부 측 관계자들은 당혹해하며 ‘논제에 집중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날 불만을 표출한 건 전 회장만은 아니었다. 한 지역농협 조합장도 의무 자조금 제도에 대한 회의를 표했다. 그는 “쌀 농사 2ha(6000평)를 지어도 1년 실소득이 1000만원도 안 되는데, 이런 근본적인 소득 문제부터 해결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지금까지 정부가 시행한 정책 중 성공한 농정이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나마 그들은 목소리를 냈다. 23개 자조금 품목을 대표하거나, 이들 품목 업무와 관련해 토론회에 참석한 관계자들 중에는 그저 토론석에 앉아 자리만 지키다 퇴장한 이들이 수두룩하다. 정작 귀추가 주목되는 건, 아직 의무 자조금제 전환이 요원해 보이는 과수·과채 품목의 자조금 추진 현황인데 말이다.

 강용 친환경농산물자조금관리위원장은 “자조금 운용의 명확한 목표와 정부의 강력한 추진이 있어야 한다”면서도 “능력이 없는 자조금 단체는 실패까지도 각오해야 한다”고 쓴소리를 아끼지않았다.

 친환경 농산물은 현재 인삼과 함께 의무 자조금 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품목이다. 친환경 의무자조금은 각계의 노력과 진통 끝에 지난 7월 출범했다.

 그런 강 위원장 마저도 “자조금 위원회에 대한 농민들의 불신이 크다. 직원들 배만 불리는 단체가 아니냐고 묻곤 한다”며 농민들의 우려를전했다.

 아울러 농산물 자조금이 ‘제2의 세금’, 즉 준조세처럼 인식될 것에 대한 우려도 이번 토론회에서제기됐다. 자조금의 목적이 사실상 소비 촉진을 위한 홍보와 연구개발, 수급 조절 보완 등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정부를 위해 ‘헌납’하는 듯한 인식이 깔려 있단 뜻이다.

 심지어는 자조금이 뭔지 잘 모르는 농가들도 많다. 실제로 몇몇 농가들에 ‘자조금을 아느냐’고 물은 결과, ‘그게 뭐냐’거나 ‘농협에서 알아서 낸다’는 답변 외에는 별다른 대답을 듣지 못했다. 자조금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자신이 자신을 돕기 위해서 조성한 기금’인데, 정작 농민들이 인식조차 못하고 있다는 건 문제다.

 정부로서는 억울한 면도 있을 것 같다. 매칭 형태로 자조금 지원까지 했는데, 이제껏 공들인 건아랑곳없이 ‘모른다’ ‘못 낸다’ 또는 ‘필요없다’고 말하는 농업인들에게 답답한 마음도 들 것이다.

 그러나 정부와 소통의 기회가 생기면 분통부터 터뜨리고 보는 농민들 역시, 정부에 대해 깊은 불신과 좌절을 안고 있음을 눈여겨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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