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우장춘·유달영 박사 등 ‘한국 농업의 별’ 13인 선정
연재 -우장춘·유달영 박사 등 ‘한국 농업의 별’ 13인 선정
  • 농업정보신문
  • 승인 2015.08.14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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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림축산식품부는 ‘광복 70년, 농림업 70년’ 행사를 통해 우장춘·유달영 박사 등 ‘한국 농업의 별’ 13인을 선정했다.

국산 종자 개발에 기여한 육종학자 우장춘 박사, 농지개혁을 추진한 조봉암 초대 농림부장관, 전국농업기술자협회 총재를 역임한 류달영 박사 ,통일벼를 개발한 ‘통일벼의 아버지’ 허문회 박사 △통일벼 보급으로 쌀 증산에 기여한 김인환 전 농촌진흥청장, 경운기 등 농기계의 대명사 대동공업을 창업한 김삼만 회장 △풀무원을 창업하고 유기농을 개척한 원경선 원장,토종 종자기업 농우바이오 설립자 고희선 회장 △수목 육종학자 현신규 박사, 농업경제학의 기틀을 마련한 김준보 박사 △대산농촌문화재단을 설립한 신용호 교보생명 창업주, 채소씨앗 자급자족의 기반을 마련한 흥농종묘 이춘섭 창업자이다.

 ‘한국 농업의 별’ 13인 관련인물

 

우장춘 박사

육종학자 우장춘 박사(1898∼1959)
우장춘 박사는 육종학자로서 채소종자의 국내 자급과 무균종서 생산으로 해방 후 식량난 해소와 국산 종자개발에 기여했다.

일본에서 출생하여 1936년 동경제국대학에서 농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50년 정부의 초청으로 귀국하여, 사망하던 1959년까지 만 9년 5개월간 한국농업과학연구소장·중앙원예기술원장·원예시험장장을 역임했다.

1931년「유채품종의 특성조사」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논문을 발표하던 중 1935년 십자화과속의 식물에 관한 게놈분석을 시도한 박사학위 논문을 발표하여 연구의 절정을 이뤘다. 해당 논문의 중요성은 현존종을 재료로 하여 또 다른 종을 실험적으로 합성해 냈다는 데 있다. 이것을 ‘종의 합성’이라고 하며, 세계적으로 이 방면 연구의 새 길을 터놓은 것이다.
1959년 8월 11일 사망하자 정부는 부산시문화상에 이어 두 번째의 문화포장을 수여했다.

 

류달영 박사

류달영 박사 (1911~2004)
류달영 박사는 기아해방 한국위원회 위원장, 국민재건운동본부 본부장, 전국농업기술자협회 총재 등을 역임하며 식량 자족 운동, 무궁화 보급, 인재양성 등에 힘을 쏟은 농학자다.

경기도 이천 출생했으며 1947년 서울대 농대 교수를 역임하고 1956년 미국 미네소타 대학에서 화판 원예학을 연구한 뒤 귀국했다. 1961년 재건 국민운동 본부장 등을 역임하며, 사회 개발에 헌신했다. 1966년 다시 서울대 농대 교수로 복귀했으며 1967년에는 가족계획협회장을 역임했다. 1972년 전국 농업 기술자 협회 총재ㆍ1978년 한국 유기 자원 농업 연구 회장ㆍ1978년 서울대 명예 교수ㆍ1983년 인간교육원 회장ㆍ1984년 농축수산유통연구원장ㆍ1985년 한국적십자봉사회 중앙협의회장 등 소임을 맡았다. 금성화랑무공훈장ㆍ대통령 표창ㆍ홍조근정훈장을 수상했다.

유석창 박사

교육자 유석창 박사(1900~1972)
유석창 박사는 건국대학교를 설립하여 축산교육을 육성하고 아울러 인재양성에 크게 기여한 교육자다. 그는 독립운동가인 아버지를 따라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가담했으며 귀국후 민중병원을 설립해 가난한 환자를 치료하는 데 평생을 헌신했다. 또한 건국대학교를 설립하여 축산교육을 육성하고 인재양성에 몰두했다. 아울러 1932년에는 『보건신문』을 창간하는 등 일제치하에서 어려운 민중들을 위한 시료와 보건교육에 심혈을 기울였다.

1945년 8월에는 한국국민당 창당발기인으로 참여했으며, 같은 해 10월 사설강습소인 건국의숙인가를 얻었다. 1962년에는 농협대학을 설립, 이듬해인 1963년 제4회 전국농업기술자대회를 계기로 (사)전국농업기술자협회를 창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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