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 돌려막기 농사, 농민은 반대
과일 돌려막기 농사, 농민은 반대
  • 이나래 기자
  • 승인 2016.07.18 15: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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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신문을 농림축산식품부에서도 보나요? 그럼 이 말 좀 꼭 전해주세요. FTA 폐업 지원을 할 때, 과일 폐업 지역엔 다른 과일을 심지 말게 해 달라고요.”

며칠 전 경북 상주의 포도 농가를 찾았다. 씨없는 청포도를 재배하는 그는 작목반 회장을 맡고 있었다. 소속농가 140호를 대표하는 그가 바라는 건 FTA 부분 폐업제 도입, 그리고 ‘돌려막기 식’ 과일 농사를 정부가 막아주는 것이었다.

올해 포도 농사 30년차인 그는 국내에서 가장 많이 재배하는 ‘캠벨얼리’로 시작해 3년 전부턴 샤인머스캣 재배에 집중하고 있다.

그가 거주하는 상주는 포도 주산지다. 지난해 농식품부가 FTA 보상의 일환으로 폐업 지원공고를 냈을 때, 이곳의 많은 고령·영세농들도 폐업을 신청했다. 복숭아, 배의 주산지이기도 한 상주에선 포도 폐업농 중 다수가 복숭아 또는 사과 등 다른 과수로 전환하면서 관련 농가들이 긴장했다는 후문이다.

사정은 다른 지역도 비슷하다. 포도 폐업농 중 과일 농사를 지속하겠다고 밝힌 농가는 대부분 복숭아를 택했다. 돈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때문에 애꿎은 복숭아 시세만 하락했다. 올해는 개화기 저온 피해 탓으로 급격한 가격 하락은 면할 수 있었지만, 기후가 좋고 별다른 병해충 피해가 없다면 복숭아 값 하락세의 심화는 불보듯 뻔하다.

복숭아 생산자들 입장에선 가만히 앉아 ‘당한’ 꼴이 됐다. 수입 과일 때문도, 병해충 때문도 아닌, 국산 과일 생산자들로부터 역공을 당한 심정은 어떨까. 그리고, 이렇게 되기까지 당국의 책임은 전혀 없을까.

앞서 밝힌 작목반 회장의 제안에 따르면, 정부가 과일 농사 폐업 신청을 받을 때 밭 100% 의 폐업을 신청받는 대신 일부만 폐업신청할 수 있게 하고, 폐업이 결정된 과수원 면적에는 다른 과일을 심으면 안 된다. 그 이유는 복숭아의 예에서 보듯, 기존에 해당 품목을 재배하던 농업인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폐업한 땅에 정부는 다른 밭작물의 재배를 권장하고, 만약 재배할 줄 모른다면 적절한 교육과 보상으로 유인하라는 것이 그의 제안이다. 그마저도 싫다는 고령농에게는 연금 제도에 준할 만큼 충분한 보상금을 줘 아예 농업에서 ‘은퇴’하도록 하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다같이 죽자’는 의도가 아니라면 정부는 지금이라도 이 같은 생산자들의 제안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당장은 포도 폐업책으로 급한 불을 껐을지 모르지만, 몇 년 뒤 또 어떤 품목이 ‘아픈 손가락’이 될지, 정부는 결코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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