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약 사고 책임은 농민 몫?
농약 사고 책임은 농민 몫?
  • 이나래 기자
  • 승인 2016.04.11 1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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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어난 사과 맛으로 유명하던 경북 청송이 최근 농약 사건의 오명을 썼다. 마을회관 냉장고의 소주에 누군가 제초제를 탔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국민들은 충격에 빠졌다. 당국은 뒤늦게 ‘메소밀’ 자진 반납 조치에 나섰다. ‘메소밀’은 이번 청송 농약 사건에서 검출된 고독성 제초제다.

그런데 ‘메소밀’은 이미 2011년 농촌진흥청이 등록을 취소한 농약이다. 사람이 소량만 섭취해도 사망할 수 있어 판매 및 사용을 금지했다. 이번 사건에 쓰인 ‘메소밀’은 2011년 이전에 구매한 피의자가 반납하지 않고 소지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당국이 사용을 금지했는데도 버젓이 방치된 농약은 비단 ‘메소밀’만이 아니다. 얼마전 본지 기자가 전북의 한 농촌 지역을 방문했을 때, 논두렁에 맹독성 제초제 ‘그라목손’ 병이 방치돼 있어 크게 놀란 바 있다. ‘그라목손’ 역시 2011년 등록 취소된 농약이며, ‘죽음의 농약’이라 불릴만큼 맹독성이다. 당시 발견 장소는 인적이 오가는 논두렁이었고, 사용 가능한 다른 농약들과 함께 방치돼 있었다.

쓰다 남은 농약병이나 폐농약병의 방치·무단 매립, 그리고 농약 음독 사고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불과 1년 전에도 경북 상주에서 이른바 ‘농약사이다’ 사건이 일어나 떠들썩했다. 하지만 관리 당국은 ‘요지부동’으로 보일 만큼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 기껏해야 자진 반납을 ‘독려’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자재관리 업무 관계자에게 문의하니, “완전히 다 쓰고 난 빈 병이라면 환경부가 수거하고, 내용물이 남아 있다면 지자체가 수거 권한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농촌진흥청에 문의하자 역시 “쓰다 남은 농약 수거는 각 지자체 환경 관련 부서가 담당한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수거하려면 주민 신고가 있어야 한다. 지자체 인력은 한정돼 있기 때문에, 농가를 일일이 방문해 등록 취소된 농약을 갖고 있는지 조사한다는 건 비현실적이다. 만약 한다 해도, 농가가 해당 제품을 숨기면 알 길이 없다.

결국 치사율 높은 맹독성 농약의 자진 반납률을 높이려면, 반납에 대한 인센티브를 높여야 할 것이다. 이번 ‘메소밀’ 반납시 건당 5000원 내지 구입가 2배의 현금 또는 현물을 보상한다고 하는데, 고작 5000원을 받으려고 ‘귀찮은’ 신고 절차에 기꺼이 응하는 농업인들이 과연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또한 지금처럼 사건 발생 후 그때그때 뒷북대응하는 방식으로는 농약 사고의 근절이 요원해 보인다. ‘사건이 안 터지면 다행이고, 터지면 그때 가서 수습한다’는 식의 안일한 대처 관행이 당국에 만연해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이다. 현재와 같은 농약 사고 대응 방식을 미뤄 보건대, 농약사고 책임은 정부나 지자체, 판매업자가 아닌 농민에게 있다는 ‘암묵적 동의’가 관계자들 사이에 팽배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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