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에서 동물 ‘복지’ 농장으로
동물농장에서 동물 ‘복지’ 농장으로
  • 이나래
  • 승인 2015.11.02 10: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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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우리를 전철에 밀어 넣고 밤낮 없이 빛을 쬐어 댄다면 어떤 기분일까. 전철 칸은 만원이다. 모두 그 자리에서 밥을 먹고, 용변도 수면도 같은 자리에서 해결해야 한다. 그런 생활이 30일간 계속된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같은 이 상황은 닭 사육장을 빗댄 설명이다. 오늘날 국내에서 사육되는 육계, 즉 식용 닭은 대부분 더 빨리 더 많이 살찔 수 있게 밀집 사육된다. 한마디로 인간을 위해 길러지다 죽는 것이다.


먹이 사슬의 최상층에 자리한 인간이 닭을 잡아먹는 건 죄가 아니다. 하지만 닭을 공장에서 찍어내듯 하는 관행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는 생각해봐야 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최근 전북 정읍과 경기 안성에 소재한 육계, 토종닭 농장 총 2곳에 대해 육계 농가 중에서는 국내 최초로 동물복지 인증마크를 부여했다. 이 두 곳에서 사육되는 닭은 총 약 11만 수. 지난 7월 기준 국내 육계 규모가 약 2억 마리인 사실과 비교하면 극히 일부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 확인한 결과, 이번에 인증을 받은 농장은 평사(바닥에 풀어놓고 키우는 방식)로 운영되고 있다.


추가로 자연 방목 인증까지는 미치지 못 했지만, 횃대 설치와 암모니아 관리 등 복지기준을 준수하고 있다.


아쉬운 점은 국내 동물복지 인증제가 이제 겨우 걸음마 단계라는 사실이다. 산란계 농가 중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국내 농가는 지난 9월 기준 총 67곳이다.


역시 전체 산란계 농가에 비하면 소수다. EU나 미국의 여러 주가 산란계 케이지 사육금지를 법으로 명문화한 것에 비해 우리나라는 한참 뒤처졌다.


더욱이 육계의 경우 동물복지 인증을 받는 농가에 대한 정부의 금전 지원이 전무한 상태다. 검역본부에 따르면 직불제 도입을 추진했으나, 예산 편성이 무산됐다. 결국 고비용 부담은 온전히 판매 수익으로 메꿔야 한다는 뜻이다.


현재 육계 값 폭락으로 양계농가의 민심도 뒤숭숭하다. 이는 육계 대량 생산체제에서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다. 육계 가격 정상화, 나아가 동물이 대우받는 국가로서 브랜드 구축을 위해 더욱 적극적인 동물복지 인증제 확산이 필요하다.


한 나라의 수준을 알려면, 그 나라 동물들이 받는 대우를 보라고 했다. ‘먹어치울’ 동물이라도 생명의 존엄은 지켜져야 한다. 학대받아서는 더더욱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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