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농업의 별’ 13인-조봉암 장관, 허문회 박사, 김준보 박사
‘한국 농업의 별’ 13인-조봉암 장관, 허문회 박사, 김준보 박사
  • 농업정보신문
  • 승인 2015.09.16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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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암 초대 농림부 장관


11. 초대 농림부 장관 조봉암 (1899~1959)

조봉암은 우리나라의 초대 농림부 장관(1948~1949)이다. 농지개혁을 통해 소작농을 혁파하고 자작농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평가받는다.

조봉암 장관이 마련한 농지개혁을 통해 60만 ha의 농지를 분배한 결과 소작지가 1945년 65%에서 1951년 8%로 감소하고 순자작농가가 1945년 29만호에서 1951년 93만호로 3.2배나 증가했다. 우리 농업이 자작농 위주로 발전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한 인물로 평가 받는다.

 

허문회 박사


12. 통일벼를 개발한 ‘통일벼의 아버지’ 허문회 박사(1927~2010)

허문회는 통일벼를 개발하여 쌀 자급 달성에 결정적 기여를 한 대한민국 농학계의 선구자입니다. 그는 1927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농학과를 졸업(54년)하고, 중앙농업기술원(54~55년)과 농사원(현 농진청) 농사시험장(55~60년)에서 활동하다 서울대 농대 교수로 자리를 옮겨 활발한 연구활동을 계속하였습니다.

그는 필리핀 국제미작연구소(IRRI)를 통해 당시 최신의 벼 육종 기술을 접하게 되었으며 이를 토대로 기존의 재래종 벼보다 많은 볍씨를 가진 통일벼 모종을의 개발에 성공하였습니다. 그는 이후에도 한국육종학회장(83~85년), 한국작물학회장(85~87년) 등을 지내면서 우리나라 농학계의 선구자 역할을 했습니다. 또 서울대 농대 교수로 30년 이상 재직하면서 벼 연구와 후학 양성에도 앞장서 우리나라 농학 발전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그는 교잡육종의 기술을 통해 통일품종만을 개발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품종들의 개발을 주도하면서 우리나라 벼 발달을 주도했다는 평가도 함께 받고 있습니다.

서울대 농대 정년퇴임 이후에도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벼에 대한 지식과 기술을 이용하여 벼 재배의 전파경로를 추적하는 연구를 계속해서 수행하였습니다. 고고학자들에게도 도움을 주어 우리나라 벼농사의 시작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3천년 전보다 훨씬 이른 5천년 전이라는 것을 밝혀내기도 했습니다. 그의 벼에 대한 유전연구와 열정 덕분에 우리나라 벼 연구 수준은 한층 더 높아질 수 있었습니다.

 

김준보 박사

13. 농업경제학의 기틀을 마련한 학자 김준보 박사(1915~2007)

김준보는 농업경제학을 경제학의 분과가 아니라 독립된 학문으로 분리하여 국내 농업경제학의 기틀을 닦은 학자이다.

농경제학회를 창설하고 초대 학회장을 역임했으며, 통계학회를 창설하고 학회장을 역임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그는 학자로서 대한민국 경제학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을 가꾼 사람들 50인」 학술 분야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1957년 농업 경제학 연구를 위한 학술 단체인 한국 농업 경제학회를 설립하여 농업·농촌 및 농민에 관한 경제적·사회적인 제반 문제를 학문적으로 연구했으며, 한국 통계학회와 한국 경제학회 등 여러 학술 단체에서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사 분야의 연구 업적을 인정받아 1966년에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으로 선출됐다.

1974년에 서울특별시 문화상, 1978년에 대한민국 학술원상 저작상을 수상했고, 1983년에는 ‘한국 경제 신문’이 시상하는 다산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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