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초제 안 쓴 과일 사먹을 권리
제초제 안 쓴 과일 사먹을 권리
  • 이나래
  • 승인 2015.09.14 17: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농약 인증제 때문에 농민들 허리만 박살났어요. 도대체 정부의 친환경 농업정책이 추구한 바가 무엇입니까?”

경북 김천에서 20년째 사과농사를 하는 A씨는 머지않아 GAP 인증제로 ‘갈아탈’ 예정이다. 저농약 인증을 위해 그동안 제초제를 안 썼지만, 올 연말 저농약 인증제가 전면 폐지되기 때문이다. 저농약 인증과 달리 GAP 인증은 제초제를 쓴 농가라도 받을 수 있다. 사용 기록만 확실하면 되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A씨는 친환경 농법을 고수하는 농민이다. 토양 관리에 대한 신념으로 천연 방제액을 농약과 병용한다. 과수 특성상 필요최소한의 농약은 사용하지만, 친환경 농법에 대한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A씨마저, 저농약 인증제가 폐지되면 ‘GAP로 돌아가는 것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너무 힘들어서’다.

정부는 친환경 인증에 대한 국민 신뢰도를 제고하고, 농산물우수관리인증제도(GAP)를 확산코자 저농약 인증제를 폐지키로 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무농약과 유기농, GAP만 친환경으로 인증받게 된다. 이렇게 되면 친환경 농법 중 저농약 재배가 대다수(86%)인 과수업계는 기로에 서게 된다. 농약 없이는 안정된 재배를 할 수 없기에 유기농을 실천하기는 어렵고, 그렇다고 GAP로 무작정 전환하는 것도 썩 내키지만은 않을 듯하다.

이에 대해 정부는 가급적 유기농이나 무농약 재배로 농가를 유도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벼나 기타 밭작물과 달리 유기농으로 수익을 보전하기 어려운 과수 농가가 과연 이러한 정부의 방침을 온전히 이행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소비자의 입장 또한 고려해야 한다. 유기농(무농약) 과일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는 상황에서, 그나마 저농약 과일이라도 사먹던 소비자들은 내년부터 아예 유기농․무농약 과일을 사먹든지, 혹은 GAP 인증 과일을 사먹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물론 GAP 인증제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GAP 인증이 곧 친환경을 인증하는 건 아니라는 데 있다. GAP는 말 그대로 농산물을 ‘우수하게’ 관리하는 취지의 제도이지, ‘농약 안 쓰고 우수한’ 농산물을 관리하는 제도라고는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별도로 이력을 추적하기 전까지는 GAP마크를 단 과일에 제초제가 쓰였는지, 농약은 얼마나 쓰였는지 매장에서 바로 알기 힘들다. 현재는 저농약 마크만 보고 제초제를 안 쓴 과일을 구분할 수 있지만, GAP 마크만 보고는 이를 구분할 수 없다.

국제적 통용 기준에 맞추고 친환경 마크의 신뢰도를 제고하려는 정부의 취지에는 동의한다.  또 제초제만 안 썼다고 해서 무조건 안전한 과일이라는 뜻도 아니다. 다만 다른 농약에 비해 제초제에 대한 소비자의 불신과 공포가 더 큰 만큼, 소비자가 제초제 사용 여부를 명확히 알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