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든 남자, 여자를 기다리며
꽃을 든 남자, 여자를 기다리며
  • 이나래
  • 승인 2015.09.07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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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삼청동은 연인들의 메카다. 주말에 삼청동 골목을 걷다보면 꽃을 든 남녀를 종종 보게 된다. 얼마 전 삼청동을 찾은 필자의 눈에는 말린 안개꽃을 든 연인이 눈에 띄었다. 말린꽃은 최근 강남고속터미널 지하 꽃시장에서도 부쩍 자주 보이기에 유독 눈길이 갔다.

명동이나 신촌, 삼청동 등 서울의 주요 관광지에 입점한 꽃 소매상의 진열대를 보면 젊은층  사이의 꽃 트렌드를 알 수 있다. 10년 전만 해도 주로 볼 수 있는 건 단품(한 송이) 장미나 꽃다발이었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비누꽃(장미)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시들지 않고 이색적인 제품이 생화를 대체한 것이다. 그리고 요즘은 말린꽃, 이른바 드라이플라워가 유행하고 있다. 예쁘게 시든(?) 데다 젊은층이 선호하는 특유의 빈티지함 때문에 일부러 말린 꽃을 찾는 이들도 늘고 있다.

새삼 말린꽃 이야기를 하는 건 꽃에 관한 기억을 말하기 위해서다. 꽃에 관한 최초의 기억은 단정할 수 없지만, 학교 졸업식 때면 펼쳐지던 너저분한 ‘꽃판’의 광경만은 똑똑히 기억한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 때까지 졸업식, 그리고 입학식이면 학교 앞은 대목에 한 몫 단단히 챙기려는 꽃 판매자들로 붐볐다. 그들은 평상시보다 몇 배나 비싼 꽃다발을 강제로 안기며 ‘사가라’고 강매하는가 하면, 팔을 잡아끄는 등 불쾌함을 주곤 했다. 그런 날 학교 앞은 온통 팔다 남은 꽃이나 짓밟힌 꽃들로 지저분해지곤 했다.

또 스승의 날이나 어버이날에 찾아간 꽃 상가에서의 기억도 그리 좋지만은 않다. 원산지 표기도 없이 집집마다 똑같은 가격을 받거나, 조금이라도 더 좋은 제품을 고르면 턱없이 높은 가격을 부르는 등 결코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

개인의 경험을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최근의 꽃 시장 침체는 화훼를 외면하는 소비자의 실태를 여실히 드러낸다. 지난해 6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간한 소비행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대의 65.6%가 ‘꽃을 돈 주고 사기 아깝다’고 답했다. 또 소득이 적을수록 꽃 구매를 사치로 여긴다고 대답했다.

결국 3포(결혼 취업 출산) 세대라 불리는 청년들이 주류가 되는 사회에서 화훼 산업의 부활은 요원해 보인다. 화훼 업계는 엔저에 따른 수출 부진과 지속된 경기불황을 산업 침체의 원인으로 꼽고 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소비자의 수요를 반영한, 나아가 소비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동력과 비전이 필요하다. 꽃을 외면하는 소비자들을 탓하지만 말고, 바가지 관행은 근절됐는지 기념일 대목특수에만 지나치게 의존한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정부당국도 손 놓고 있을 일만은 아니다. 수출 의존도를 줄이고 우선 내수시장을 튼튼히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국가 차원에서 화훼나 원예교육을 확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유년 시절부터 꽃을 가까이 하고 꽃을 통해 정서를 함양할 수 있도록 하는 건 어떨까. 세 살 버릇 여든 가듯, 어렸을 때 꽃을 별로 다뤄보지 않은 이들이 훗날 꽃과 가까이 지낼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가뜩이나 세태가 각박한 요즘, 꽃을 든 여자 그리고 남자들이 많아지는 사회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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