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뜰배와 패션푸르트
알뜰배와 패션푸르트
  • 이나래 기자
  • 승인 2017.02.20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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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경기도의 한 대형마트에서는 패션푸르트 1상자를 9600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한 상자에 16개가 들어있었다. 모 다국적기업 로고가 적혀 있었지만, 내용물은 뜻밖에 국산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서울 서초구의 농협하나로마트에선 국산 배 한 상자가 9000원대 후반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었다. 선물용이 아닌, 가정 소비용 ‘알뜰’ 기획 상품이었다. 한 상자에 배 10~11개가 들어있었다.

패션푸르트는 아직까지 국내에 흔히 알려진 과일은 아니다. 20~50대 여성 소비자들 사이에 마니아 층이 늘어가고 있기는 하지만 사과, 배처럼 인지도가 높지는 않다. 서울시내에서도 대형마트 정도는 돼야 패션푸르트를 진열해 놓고 있다.

주목할 점은, 패션푸르트와 알뜰 배의 낱개 가격이 비슷하다는 점이다. 배 1개의 무게가 패션푸르트 1개 무게보다 훨씬 무겁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량으로 계산한 단위가격은 패션푸르트가 더 높은 셈이다.

이러한 차이는 직거래 가격을 고려할 때 더욱 분명해진다. 전북 순창군 등 전라도 지역에서 재배된 패션푸르트를 온·오프라인으로 직거래 하는 농가들은 최근 개당 1000원 선에서 패션푸르트를 판매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아열대과일에 대한 국내 소비자들의 수요가 ‘전통 과일’ 수요를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둘째, 특히 젊은 소비자들은 아열대과일에 대한 관심과 기호가 높다. 셋째, 세대 교체가 진행될수록 ‘전통 과일’에 대한 수요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여기서 전통 과일이라 함은 사과와 배, 단감 등을 일컫는다. 이들 과일의 특징은, 이 과일을 사먹는 주된 소비층이 주부라는 사실이다. 10~20대 남녀에게 같은 가격으로 망고와 바나나, 배, 단감 중 한 가지를 고르게 한다면 십중팔구는 망고나 바나나를 택할 것이다. 어려서부터 단맛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워킹 푸어’ 세대로 일컬어지는 20~30대 직장인들은 과일을 상자째 사다 놓고 먹는 습관이 배어 있지 않다. 이들에겐 차라리 편의점에서 조각내 파는 모듬 과일이나 오래 ‘쟁여’ 두고 먹을 수 있는 수입 냉동 망고·블루베리가 더 익숙하다.

이러한 문화를 간과한 채, 저장창고에 넘쳐나는 사과·배의 소비를 일시적인 소비 캠페인 또는 해외 수출로만 해결하기엔 한계가 있다. 근본적인 방법은 생산량을 줄이고 품종을 다양하게 늘리는 길이 될 것이다. 젊은 소비자들은 새롭고, 신기하고, 달콤한 과일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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