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탁금지법 시행 60일…위기의 화훼산업
청탁금지법 시행 60일…위기의 화훼산업
  • 나성신 기자
  • 승인 2016.11.29 14: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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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물량 30%, 단가 20% 감소 겨울철 난방비 걱정 ‘발동동’

지난 9월 28일 부정청탁방지법이 시행된 이후 국내 화훼산업이 존폐의 기로에 섰다.

경매 물량은 30%, 유찰률 30% 증가, 단가는 20% 이상 하락했다. 청탁 금지법 시행으로 인해 국내 소비량의 85% 이상을 차지하던 경조사용 꽃 소비가 끊겼기 때문이다.

국내 최대 화훼류 경매시장인 양재공판장 거래량도 눈에 띄게 뚜렷하다.

10월 한 달간 절화류 거래량은 99만900속으로, 133만속이던전년도 동월 대비 24.9% 줄었다. 분화류는 같은 기간 77만분이 거래돼 108만 9000분이던 지난해에 비해 29.3% 급감했다. 유찰도 지난해 대비 30%, 단가역시 20%가량 떨어진 금액으로 거래되고 있다.

이제 겨우 청탁금지법이 시행된 두 달 남짓 동안 벌어진 일이라곤 믿어지지않을 정도다. 농가에서 체감하는 분위기는 더욱 살벌할 정도다.

경기도 일산에서 31년째 분화류를 재배하던 조헌상 대표는 “청탁금지법이 시행된 이후 IMF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라고 토로한다. 조 대표는 “법이 시행되더라도 분화 쪽은 큰 타격이 없을 줄 알았는데 소비가 많이 줄어들어 올 겨울나기가 겁날 정도”라고 한숨지었다.

경기도 일산에서 23,140㎡ 면적에 장미를 재배하고 있는 조춘래 대표는 청탁금지법이 시행되기 전에도 매년 수익이 줄어들어 간신히 버티고 있는데 법이 시행되고 나서는 하루하루 먹고살 걱정을 해야 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현재 조대표는 제주도를 오가며 투잡을 한 지 오래됐다.

“장미 농사만으로 먹고 살 수 없어서 따로 타지에 나가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 같은 화훼농가가 적잖습니다. 장미농사를 오래했는데 접을 수가 없어서 간신히 버티고 있는데 청탁금지법으로 한계에 다다른 것 같습니다.”

조 대표는 정부에서 경유를 지원해주다 올해부터 열효율성이 떨어지고 농가에서 쓰지 않는 등유로 난방지원을 전환하면서 당장 난방비 걱정을 해야 할 지경이라고 한다.

그는 “평당 난방비가 400~500만원가량 드는데 인건비는 고사하고 난방비라도 제대로 지불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한숨만 내쉬었다.

중도매인 매출 30%가량 하락

힘든 건 화훼농가뿐만이 아니었다. 중도매인 역시 소비가 급감해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 평소 같으면 경매장에 중도매인들로 붐빌 자리가 한산하기까지 했다. 지난 11월 22일 양재동 화훼공판장에서 경매에 참가한 성남에서 판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최종수 대표는 화훼시장의 심상찮은 분위기를 전했다.

최 대표는 “이맘때 겨울철 식물을 구매하거나 인사철 시즌을 맞아 매출이 어느정도 뒷받침해줬지만 청탁금지법이 시행된 이후에 아예 구매가 절반으로 끊긴 상황”이며“이대로 1년만 가면 화훼시장이 죽을 것 같다”고 우려했다.

양재동 꽃시장에서 15년 째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이모 대표는 청탁금지법과 관련이 없는 일반 손님들도 뜸하다며 비수기지만 작년대비 매출이 30% 가량 줄어든 것 같다고 말한다.

이모 대표는 3만원, 5만원 선에서는 꽃 선물을 주고받아도 되는데 아직 홍보가 덜 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전했다.

직무관련 없으면 꽃 선물 주고받아도 돼

실제로 농식품부에 따르면,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화환과 난 등 선물 주문이20% 이상 감소한 반면, 수취거부 반송은 25% 이상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청탁금지법으로 인해 꽃 선물은 다 받으면 안 된다는 인식이 많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동료 사이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직무 관련성이 없으므로 동료 공직자 등의 승진 또는 전보 인사 시 5만원을 초과하는 화훼 선물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하는 것도 허용된다. 특히 직무 관련자라 하더라도 원활한 직무 수행이나 사교·의례 목적으로 제공되는 5만원 이하의 화훼류 선물은 허용된다.

단 인·허가 등을 신청한 자, 조사·수사를 받고 있는 자, 절차가 진행 중인계약 상대방, 성적·평가 등의 대상인 학생(학부모) 등 직접 이해관계가 있는 경우엔 허용되지 않는다.

이 사례는 결혼·장례 시 10만원이하의 경조화환에도 같이 적용된다.

농식품부 안형덕 원예경영과장은 청탁금지법에 대한 명확한 해석과 일반화된 판례형성이 되지 않아 불안심리가 가중되고 있다고 밝혔다. 때문에 일반 꽃 소비에도 영향을 끼친 것 같다며 앞으로 정부차원에서 ‘꽃 선물은 주고받아도 된다’라는 홍보를 적극적으로 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꽃 소비문화, 바꿔야 산다

우리나라 꽃 소비문화는 85% 이상이 경조사용이다.

이러한 꽃 소비문화 때문에 청탁금지법이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화훼농가가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 1명당 꽃 소비액은 지난 2005년2만1천원, 2010년에는 1만6천원으로 감소했다. 지난해는 1만3천원으로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화훼 선진국인 일본의 10만원, 스위스 15만원, 노르웨이 16만원과 비교해 10분의 1수준도 안 되는 수준이다.

일본과 미국 등 화훼 선진국은 70% 이상이 가정이나 사무실 장식용으로 소비된다며 우리나라의 소비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11월 9일은 aT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기자간담회를 열어 화훼 소비활성화 대책과 청탁금지법 관련, 적용대상자에 대한 홍보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쳐나갔다.

aT는 정부와 함께 올 연말까지 선물용 화훼 홍보 포스터 제작·배포, 난 선물시 리본에 부착할 홍보용 라벨 제작·보급한다. 또한 꽃 생활화 홍보 및 체험·교육, 기존 유통채널을 활용한 ‘플라워인숍(Flower in shop)’ 설치해 소비자들이 쉽게 꽃을 접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빠른 시일 내 법 개정 어려워

청탁금지법의 주무기관인 국민권익위원회의 성영훈 위원장은 “청탁금지법시행과정에서 발생하고 있는 화훼업계 등의 피해에 대해서는 안타깝게 여기고있다”며 “당장 법 개정을 약속할 순 없지만 앞으로 농가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관심을 가지고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에 하는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 날 화훼농가 패널로 참석한 고양난영농조합법인 최성은 대표는 “꽃은 뇌물도 아니고 재산적가치도 없을뿐더러 일정기간이 지나면 폐기를 해야 한다”며“주고받는 사람이 실명으로 거래되기 때문에 직무의 연과성이 있든 없든 선물가액을 떠나서 사교적 이해관계로 생각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세제난원 박정근 대표는 “빠른 시일내 법 개정이 어렵다면 한·칠레 FTA체결 시 포도농가 폐원지원 사례와 한우 값 폭락 시 한우농가 폐농 유도한 지원 사례를 꼽으며 화훼 폐농과 폐업 지원책이라도 마련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탁금지법이 시행된 지 불과 60여일이 지났다. 짧은 기간 동안 화훼농가는유례없던 소비절벽에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다. 전국각지에서 고양시 의원들이 마련한 공청회에 1000여명 가까이 참석한 것도 그에 따른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당장 법 개정도 요원한 상태다. 얼마 전 학생들이 스승의 날에 교사에게 카네이션을 주는 행위가 청탁금지법 위반이라는 국민권익위원회의 유권 해석에 교원단체가 재검토를 촉구하고 나섰다.

학생들이 마음을 담아 스승의 가슴에 꽃한송이 달아 줄 수 없는 게 현실이 된다면 과잉법 오명을 씻을 수 없을 것이다.

정부가 청탁금지법이 시행됨으로써 화훼농가의 어려움을 미리 예측하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피해를 최소할 수 있는 대책 방안을 하루빨리 내놓아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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