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안정 명분으로 쏟아지는 수입 농산물과 아쉬운 정부 개입
가격 안정 명분으로 쏟아지는 수입 농산물과 아쉬운 정부 개입
  • 최은수 기자
  • 승인 2016.08.30 1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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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에서 고랭지 배추만 30년 째 재배한 이 모씨. 그는 올해 무더위가 이어질 것이라 내다 보고 3305㎡(1만평)에 이르는 농지에 스프링클러를 비롯한 관수자재를 시공했다.

설치 비용을 합쳐 투자한 비용은 대략 4000만원이었다.

올 초 이 씨의 예상이 적중해 유례를 찾아올 수 없는 무더위가 이어졌고, 고랭지인 삼척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름에 반팔만 입고 여름을 났다.

“사람도 이리 지치는데 움직이지도 못하는 배추는 어땠겠습니까. 게다가 가물기까지 했으니 재배 농가마다 작황 편차가 더 클 수밖에요.”

기후변화를 예측하고 과감히 투자를 한 결과, 이 씨가 재배한 배추는 올해 삼척에서 가장 좋은 작황을 자랑했다.

때문에 밭떼기(포전 거래)를 할 경우 3.3㎡(1평)당 2만원까지도 호가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실제 거래된 가격은 그에 한참 못 미친 1만7000원 언저리. 이 씨가 재배한 배추의 품질이 나쁘거나, 시세가 급격히 나빠진 것 등이 원인이 아니었다.

무더위로 인해 작황이 좋지 않아 소비자 물가가 치솟을 것을 우려한 정부가 이를 명분으로 삼아 중국산 배추를 대량으로 수입한다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었다.

 결국 더 좋은 값을 받을 것이란 기대를 접고 급히 판매를 한 다음 올 초에 융자한 대출금과 이자 등을 정산해 보니 막상 그의 손에 떨어진 금액은 평년을 밑돌았다.

상인과 농업인들을 통해 형성되는 시장에 정부가 FTA 파고를 등에 업고 과도하게 개입하면서 발생하는 문제가 적지 않다.

가격이 조금만 올라도 그것을 명분을 삼아 해외 농산물을 수입해 오다 보니, 농사를 잘 짓고도 도리어 밑지는 경우가 빈번히 일어나는 것이다.

“저처럼 큰 그림을 그리고 과감한 투자를 하다가 정부가 지나치게 농산물 시장에 개입을 많이 하니 한해 농사 잘 짓고도 제값 못 받고 도리어 손해 보거나 밭을 갈아엎어버리는 일도 생기고 있습니다. 게다가 농사가 항상 잘 될 수는 없는 일인데 가격이 조금만 올라도 그것을 명분을 삼아 해외 농산물을 수입해 오니, 기함을 할 노릇이죠.”

그러면서 이 씨는 정성들여 키운 우리 농작물이 중국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반입되는 중국산 배추와 비슷한 대우를 받게 된다며 울분을 토했다.

농산물 물가가 비싼 것은 그 이유가 있는데 그것을 수급 안정이라는 명분을 들고 정부가 너무 안일하게 개입한다는 말도 함께 했다.

더불어 그나마 자신은 어떻게 본전은 건졌다고 쳐도, 만일 귀농인이나 자본이 넉넉지 않은 농업인이 시설투자를 했다가 정부 발표와 정책에 의해 시기를 놓쳐 된서리를 맞으면, 폐업 말고는 답이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오늘도 농지 한 켠에 설치한 가건물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수확을 앞둔 농지를 살피고, 다음 주에 동생과 교대를 한다고 했다.

 소비자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하기 위한 정부의 개입을 무조건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안전하고 신선한 농산물을 재배하기 위해 밤낮을 잊고 일하는 농업인의 피땀 어린 노력이 눈앞에 있는데, 턱없이 싼 중국산 배추김치를 무더기로 수입해 그들의 노고를 허사로 만드는 정부의 수입 정책이 과연 올바른지에 대한 의문부호는 한 번쯤 찍어 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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