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식 귀농 교육, 효과 있나
백화점식 귀농 교육, 효과 있나
  • 이나래 기자
  • 승인 2016.08.22 14: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얼마 전 경북의 한 농업기술센터 귀농 강의실을 방문했다가 실망한 적이 있다. 당시 강사는 수 년 전 귀농해 나름대로 성공한 농업인 이었다. 강사는 직접 기른 농작물을 가져와 수강생들에게 나눠주는 열정까지 보였다. 문제는 강의실 안의 풍경이었다.

강사가 1시간 내내 동분서주하며 강의할 동안, 교육 내용을 필기하는 수강생은 거의 없었다. 기술센터에서 나눠준 교육 자료를 마지못해 뒤적이거나,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티비 보듯 강연을 듣는 이들에게서 귀농의 열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30명 남짓한 수강생들 중 다수는 스마트폰을 보느라 바빴다. 어린 자녀를 데리고 와 달래느라 수시로 들락거리는 부모들도 있었다.

누구보다 의욕적이어야 할 초보 귀농인 들의 교육 태도는 왜 그리 산만했던 걸까. 당시 교육 참가생은 모두, 해당 지역에 귀농한 지 5년 미만인 귀농인 또는 귀촌인 이었다. 혹시 교육 커리큘럼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닐까?

해당 교육 담당자의 협조를 구해, 당시 강의를 포함한 총 1년 과정의 귀농귀촌 교육 커리큘럼을 확인할 수 있었다. 벼 재배, 포도 재배, 블루베리 재배, 농산물 가공 교육, 병해충 방제, 농기계교육……. 총 약 100시간의 강의 시간 중, 교육주제는 30가지가 넘었다.

그러나 병해충 방제 한 가지만 예를 들더라도, 복숭아와 수박의 경우가 다르고, 여름과 가을이 다르다. 그런데도 해당 귀농 교육은 병해충 방제를 2시간짜리 강의로 단 하루 만에 진행했다. 과연 제대로 된 병해충 교육이 이뤄지긴 했을까? 각종 병해충 종류의 의미 없는 나열에 그친 건 아니었을까?

비록 특정 지 자체의 예를 집중 소개하긴 했으나, 다른 농촌 지 자체들에도 비슷한 사례가 많다. 예비 귀농인을 위한 프로그램이랍시고 ‘귀농 스타트 교육’ 등, 그럴 듯한 타이틀을 붙여놓고, 막상 그 내용을 보면 농업과는 전혀 관련 없는 유적지 탐방이나 트래킹 등을 끼워 넣는 식이다. 이는 예비 귀농인 에게 ‘농촌 생활=유유자적’이라는 환상을 심어줄 뿐, 농업의 현실 제시와는 거리가 멀다.

귀농 교육생들에게 추천하는 작물의 선정도 정부 정책과 반대인 경우가 많다. 포도는 FTA폐업 지원 작목으로 선정된 지 오래고, 블루베리 역시 올해 폐업 지원 대상에 포함됐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지 자체들이 해당 작물을 ‘소득 작물’로 밀어붙이는 경우가 많다. 지 자체가 나서서 교육에 앞장선 덕분에, 초보 귀농인들은 판로조차 불확실한 작물 재배에 뛰어들기 일쑤다.

요컨대 요즘 전국 농촌 지 자체에서 행해지는 귀농 교육에는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지금처럼 구심점 없는 중구 난방 식 강의를 남발하는 대신, 정말 의지 있는 귀농인 들에게 지원을 집중하는 것도 대안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귀농교육은 수많은 ‘귀농 낭인’들을 양산하는 데 지나지 않을 것이다.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