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대받는 친환경 제품, 임시방편으론 해결 안 돼
홀대받는 친환경 제품, 임시방편으론 해결 안 돼
  • 최은수 기자
  • 승인 2016.06.27 15: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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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농약 인증을 받으며 재배를 하면 손도 많이 가고 생산량이 줄기 마련인데 무농약 스티커가 붙든 붙지 않든 가락시장 도매가는 거의 같거나 오히려 값을 못 받는 경우가 많아요. 왜냐고요? 농약을 친 제품들이 당연히 무농약으로 재배된 작물보다 눈에 보이는 상품성이 더 좋으니까요. 그것 때문에 무농약으로 재배하고도 무농약 스티커 붙이는 인건비 아끼느라 안 붙일 때도 있어요.”

얼마 전 김천과 순창 농가에 취재를 다녀오면서 우연찮게 들은 이야기다. 재배하는 품목은 달랐지만 두 농가 모두 농림축산식품부를 통한 무농약 인증을 받았다. 그런데 두 농가에서는 하나같이 일손이 부족한 때는 무농약 스티커를 붙여봤자 인건비 손해만 보기 때문에 스티커를 안 붙이고 내보낸다고 했다. 또 가락시장에서는 어차피 제값을 못 받아 요새는 택배를 통한 직거래나 로컬푸드 직매장을 더 선호한다고 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이 있다. 이 법칙은 16세기 영국의 금융가였던 토마스 그레샴이 제창했고, 이름을 본따 ‘그레샴의 법칙’으로도 불린다. 요새는 선택 오류나 정보 부족으로 비슷하거나 같은 정책이나 상품 중 나쁜 것들이 좋은 것들을 압도하는 역설적인 사회 병리 현상을 설명할 때 많이 언급된다.

현재 친환경·무농약 제품의 상황이 이와 비슷하다. 친환경·무농약으로 재배하고 그에 대한 인증을 받은 작물들은 여타 작물 재배보다 수고로움도 많이 들고 인력투입도 많다. 더군다나 무농약의 경우 같은 작물을 재배한다고 해도 수확량이 줄며, 식탁 위 소비자들에게 더욱 안전하다는 점 등을 살펴봤을 때 분명 친환경·유기농 제품이 기존 제품보다 가격적인 면에서 우위에 있어야 하는 것이 맞다. 게다가 정부는 지난해부터 유기농을 비롯한 친환경 재배 관련 규제를 강화하면서 기존의 저농약 인증을 폐지하고 무농약 제품을 권장하는 추임새를 띄우지 않았는가.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한때 마트 제일 앞쪽으로 자리한 친환경 코너의 제품은 값이 비싸다는 이유로 자연히 소비자의 발길이 줄어들고, 어느새 마트 구석진 곳에 자리하거나 없어진 지 오래다. 게다가 도매시장 경매사들 사이에서도 눈에 보이는 상품성이나 크기에서 뒤처진다는 이유로 친환경·무농약 인증 제품이 제값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무농약으로 재배한 농가들에게 혜택을 주는 임시방편으론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는다. 정부 측에서 내놓는 지원에 대한 일선 농가들의 불신은 극에 달했다. 지원금 등의 미봉책보다 무농약·친환경 제품을 구매한 소비자들에게 마일리지 제공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소비자들이 시장에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실효성 있는 여건 조성이 필요하다고 외친다.

정부에서 저농약 인증을 폐지하면서까지 야심차게 추진한 친환경·무농약 인증 제품이 오히려 시장에서 도태되고 있다. 말해도 바뀌지 않는, 정책 따로 현장 따로의 엇박자를 질타하는 것 같은 느낌에, 입이 아플 지경이다. 하지만 입 아프고, 수고가 든다고 모른 체하기에는 피땀흘려 기른 작물이 도매시장에서 제값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 로컬푸드와 택배 직거래로 판로를 찾았다며 애써 웃는 농민들을 지켜봐야 했던 필자의 가슴이 너무 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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