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 폐업의 풍선효과
포도 폐업의 풍선효과
  • 이나래 기자
  • 승인 2016.06.20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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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 가격이요? 상주에선 벌써 떨어졌어요. 단순한 소문이 아니에요.”

며칠 전 경북 상주에 갔다가 한 농업인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포도와 배, 곶 감으로 유명한 상주의 과일 값 동향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그는 복숭아 값 얘기가 나오자마자 고개를 저었다. 상주의 경우, 포도와 복숭아 모두의 주산지이기에 더더욱 그럴 수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포도 농가 11곳 중 1곳은 폐업 지원을 신청했다. 규모로는 총 4380농가에 달한다. 이는 정부가 실시한 FTA 직접피해 지원 정책에 따른 것이다.

문제는 ‘포도 대신 뭘 할 건가’였다. 포도 폐업을 신청한 농가 중 영농 지속의사를 밝힌 농가의 38%가 다른 과일을 재배하겠다고 응답했다. 그중 최다는 복숭아(33%), 다음은 자두(22%), 사과 (14%) 순이었다. 이는 복숭아 가격 하락전망으로 이어졌고, 복숭아 제철이 다가오면서 우려는 커지고 있다.

일부 조생종 복숭아는 전년보다 출하 시기가 다소 빨라지면서 평년, 전년 대비 높은 가격을 보이고 있으나, 중생종 등의 제철이 시작되면 가격이 낮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국농촌경제 연구원은 올해 복숭아 가격이 전년대비 3~13% 하락할 것으로 관측했다. 이처럼 포도 폐업의 풍선효과, 즉 한 문제를 해결하면 다른 문제가 불거져 나오는 현상이 실제로 과수 농업계에 나타나고 있다. 폐업을 지원하는 게 과연 근본적인 ‘해결’인지도 의문이지만 말이다.

정부로서는 ‘할 만큼 했다’는 입장이다. 농촌진흥청을 통해 품목별 기술 교육을 실시했고, 과잉 재배되는 품목들에 대해 이미 ‘경고’까지 했다고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본지와의 인터뷰에 서 설명했다. 그러나 과연 농업인들 입장에서도 그 만하면 충분하다고 느낄까. 경북 김천에서 40년간 포도 농사를 한 어느 농업인은 “30년 전엔 포도로 연 8000~9000만원을 벌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회사원들 평균 연봉이 700~800만원이었으니, 얼마나 큰돈이 었겠느냐”고 회고했다. 하지만 그가 겪은 최근의 포도 농업 사정은 꽤 나쁘다. 4~5년 전 농가에서 수취하던 거봉 1상자의 가격은 9000~1만원이었는데, 지금은 6500~7000원에 불과하다.

그동안 경영비는 계속 올라 순소득은 반토막이 났다. 이는 비단 한 사람만의 얘기는 아닐 것이다. 포도 농가들은 저가 공세로 밀려드는 수입 포도들이 무섭고, 갈수록 커지는 경영비가 부담스럽다. 지켜보던 정부가 폐업 장려라는 ‘패’ 를 꺼내들면 이번엔 다른 품목 농가들이 긴장한다. 이러다 사과, 복숭아 농가들마저 폐업 위기에 놓이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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