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정치적 ‘이앙법’이 필요할 때
지금은 정치적 ‘이앙법’이 필요할 때
  • 최은수 기자
  • 승인 2016.06.10 16: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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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0일 임기가 시작된 20대 국회가 드디어 ‘지각 개원’을 했다. 지난 9일 여소야대 국면에서 이른바 ‘협치’의 서막을 알리는 야당 출신 국회의장이 임명됐고, 13일 개원식과 박근혜 대통령의 개원연설을 시작으로 4년여의 긴 마라톤을 달리게 된다.

19대 국회는 정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식물국회’라는 오명을 쓰고, 테러방지법에 반대하는 야당의 ‘최장시간 필리버스터’ 등이 이슈가 됐던 지난 국회는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결과가 부족하고 실속이 없다는 세간의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개원 또한 무려 33일이나 늦었던 점 등을 보면, 19대가 끝나고 20대의 첫 발을 내딛는 지금의 상황을 비교하면 비교적 나은 성과를 거뒀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짚고 가야할 것이 있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통틀어서 가장 커다란 혁신과 변화를 꼽으라면 반드시 들어가는 것이 무엇일까? 모르겠거니와 한글 창제나 서양보다 몇백년은 빠른 인쇄술 등이 먼저 등장할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백성들의 목숨줄과도 같은 기간산업인 쌀농사에서의 혁신은 빼놓아서는 안 될 말이다. 볍씨를 직접 논에 뿌리던 직파 농법에서 묘판 또는 작은 부지에 모를 키운 다음 논에 옮겨 심는 이앙법으로 인해 논에서 이모작이 가능해졌고, 자연스레 소출대상이 아닌 보리를 통해 부를 축적하는 광작도 이 때부터 가능해졌다.

농업인들의 삶을 바꾸고 국가 발전을 가져온 이앙법과 이모작의 핵심은 발상의 전환과 준비였다. 직파를 할 때는, 보리 수확을 기다리고 볍씨를 심으면 때가 늦어 볍씨에서 싹이 움트지 않았다. 그 때문에 보리 농사는 언감생심이었고 결국 땅을 놀리는 일과 다름 아닌, 소출 없는 기다림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육묘를 미리 해 놓고 보리 수확이 끝나자마자 준비한 모를 옮겨 심었더니, 벼가 한창 자라는 때를 놓치지 않을 수 있게 되고 한 논에서 보리농사와 쌀농사를 병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난 국회의 잘잘못을 가리는 것과 평가를 내리는 것 역시 중요하다. 그러나 보리농사가 끝나기 전 한해 농사를 위한 육묘를 해 놓지 않으면 이모작 자체가 불가능하듯, 20대 국회는 19대 국회에 산적했던 각종 농어촌 관련 법안이 폐기된 것을 질타하는 선에서 머무르면 안 된다. 또 그나마 일찍 개원을 알렸으니 이쯤이면 되겠지 하며 이 수준에 만족하는 것도 아닐 말이다. 게다가 최근 정치권에서는 ‘협치’를 강조하는데 협이라는 것이 결코 몇 마디 말로 이룰 수는 없고 치밀한 준비와 협력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각 정당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보리농사가 끝나면 미리 키워 둔 모를 옮겨 심어 쌀농사를 이어 하듯, 원활한 국정 현안 처리를 위해서는 그에 따른 치밀하고 충분한 대비와 준비가 있어야 한다. 하늘은 결코 준비 하지 않는 자에게 떡 한 조각도 내려주지 않는다. 그리고 차일피일 미루고 방치했다가 때 늦게 볍씨를 심는다고 거기서 싹이 자랄 리도 만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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