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주기 식’ 농정 바뀌어야
‘보여주기 식’ 농정 바뀌어야
  • 이나래 기자
  • 승인 2016.03.29 09: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례 1. 충남 공주에서 농사를 하는 농업인 A씨는 최근 충남 지역에 로컬푸드 직매장이 속속 들어서는 것이 불만이다. 농촌에 안 쓰는 창고나 빈집이 넘쳐나는데, 굳이 수십억 원을 들여 로컬푸드 매장을 잇따라 지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최신 매장을 지어놔 봤자 이용할 농촌 인구도 많지 않다.

사례 2. 서울 서촌의 프리마켓을 방문한 직장인 B씨는 ‘직접 만든 수제잼’이라며 영어로 ‘organic'이라고 쓴 스티커가 붙은 잼을 구입했다가 후회했다. 정부가 인정한 공식 유기농 인증 마크가 아닐 뿐더러, 재료 원산지나 가공업자 정보가 전혀 표시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은 지난해 9월 제빵 제품 유기농 표시 실태를 일제 점검한다는 보도자료를 각급 매체에 배포했으나, 당국의 감시망을 피한 비공식 유기농 표시제품이 전국 각지의 프리마켓에서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앞서 든 사례는 ‘보여주기 식’ 농정의 예다. 거액의 예산으로 사업을 벌였지만 성과가 부진하거나, 실제 성과는 미미하면서 시늉만 거창한 농업 정책 또는 사업이다. 두번째 사례의 경우, 유기농을 거짓으로 표시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지지만, 이를 모른 채 취미로 가공식품을 제작, 임의로 유기농 스티커를 붙여 판매하는 시민들이 더러 있다. 

얼마 전 소위 ‘꾸러미 사업’의 활성화 방안을 논의하는 토론이 충남연구원에서 열렸다. ‘농산물 꾸러미 사업’으로 불리는 지역농업 공동체 지원농업(CSA) 사업의 활성화를 위해 해결할 과제와 향후 전망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전국에서 꾸러미 사업 잘 하기로 손꼽히는 농업 경영체 및 단체 관계자들의 사례 발표가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이때 한 참가자가 마이크를 이어받아 질문했다. “다 좋은데, 농민들을 불러놓고 ‘CSA 잘 해보자’라고 말하면 이해하는 농민이 과연 몇 명이나 된다고 생각합니까?”

일순간 좌중이 싸늘해졌다. 토론장에는 중국과 일본에서 온 농업 전문가와 유학파 농업 연구원, 농업계에서 이름난 교수들과 지자체 간부급 공무원들이 참석해 있었다. 토론 내내 ‘CSA’라는 용어를 언급하며 열정적으로 토론하던 그들의 뒤편엔 청중석이 있었고, 그곳엔 참관하러 온 농업인들이 앉아 있었다.

토론회를 방청한 충남 공주 출신의 한 농업인은 ‘로컬푸드 직매장을 대체 왜 그리 크게 짓는 거냐’라고 물었다. 농촌 인구가 얼마나 된다고 남보란 듯 으리으리한 직매장 짓기에 혈안이 됐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아무도 이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실제로 별 성과도 없으면서 ‘일제 점검’이라든가 ‘대대적 단속’ 식의 보도자료를 배포해 국민들을 눈속임하거나, 수요자인 농업인들의 비웃음을 살 정도로 겉치레에만 신경 쓰는 ‘보여주기’식 농정은 이제 바뀔 때가 됐다.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