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 울리는 수출 만능주의
농민 울리는 수출 만능주의
  • 이나래 기자
  • 승인 2016.02.19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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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님 앞이라 죄송하지만, 정말 짜증이 납니다. 아직 선적식도 안 했는데 ‘수출이 됐다’라고 보도가 되다니요.”
이달 초 경기 화성시의 한 수출업체에서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배석한 수출 합동보고회가 열렸다. 요지는 농식품부 이하 총 7개 기관이 금년도 농식품 81억 불 상당 수출을 위해 분발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자리에서 하동호 한국수출딸기생산자연합회장은 이동필 장관에게 딸기 수출의 애로사항을 토로하던 중 흥분한 목소리로 실상을 ‘고발’했다.
한때 딸기 수출 열기가 과열돼 농가끼리 출혈 경쟁을 한 탓에, 국산 딸기가 모두 ‘×값’을 받은 전례가 있었다는 것이다.
나아가 농식품부는 ‘지난 1일자로 국산 딸기가 베트남에 수출 가능하게 됐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작성해 공개한 바 있는데, 일부 언론이 ‘2월 1일부터 베트남에 한국딸기 수출 확정’이란 뉘앙스로 보도함에 따라 생산 당사자로서 ‘힘이 빠졌다’고 하 회장은 호소했다.
물론 몇몇 언론사가 정확히 확인도 안한 채 오해의 소지가 있도록 보도한 건 잘못이지만, 농식품부 역시 수출 성과 떠벌리기에 급급한 것은 아니었나 하는 의문이 남는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정작 딸기 농업인들은 딸기를 수출하는 것보다 국내 판매를 더 선호하는 경우가 많은데, 성에 차지 않는 물류비 지원만 받고 수출하려니 불만이라는 것이다.
비슷한 사례는 화훼에도 있었다. 정부는 그동안 중국에 분화 형태로 주로 수출하던 심비디움을 향후 일본에 절화 판매로 주력할 방침이다.
그러나 사실을 알고 난 심비디움 생산자의 반응은 정작 분노에 가까웠다. 한국화훼농협의 한 심비디움 관계자는 이 소식을 듣고 “국내에 팔 때 그나마 이익이 더 많은데, 물류비 외에 부자재 지원 등의 계획도 뚜렷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슨 근거로 대일 수출을 늘리겠단 거냐”고 반문했다.
심비디움은 일본 수출시 물류비와 부자재비가 많이 들어 국내에 팔 때보다 순수익이 절반이나 적기 때문에 수출 확대계획이 전혀 달갑지 않다는 입장이다.
더욱이 정부로부터 심비디움 수출 확대에 대해 어떠한 공식적인 통보도 받지 못했다고 그는 전했다. 일부 지역의 생산자들과 논의가 됐을 수는 있겠지만, 생산자 대표와 정부 관계자 간 공식적인 논의는 없었다는 것이다.
하물며 정부가 수출을 장려하는 품목의 실태가 이럴진대, 다른 농산물 수출 실태는 어떨까. 단지 수출 실적이 얼마나 늘었는지 보고하기 위한 목표 설계를 하기 이전에 농업인들의 삶을 지금보다 더 윤택하게 해줄 내수 진작 방안은 무엇이 있는지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농식품부는 수출만능주의에 따른 ‘실적 경쟁’에 매몰됐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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