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 장사꾼이 된 농사꾼
농산물 장사꾼이 된 농사꾼
  • 이원복 기자
  • 승인 2018.04.16 13: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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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꾼들이 농산물의 판로 확보를 위해 지금처럼 힘들었던 때가 있었을까. 교통·통신이 눈부시도록 발전했음에도 시간이 지날수록 농민들의 판로 고민은 늘어가고 있는 것 같다. 하물며 ‘생산보다 판매가 중요하다’는 말이 괜히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제는 농사꾼이 장사꾼의 역할도 해야 한다.

지난해 천안의 한 오이농가는 판로를 확보한 후 취청오이를 정식했다. 하지만 취청오이 수확 전에 계획되었던 판로가 엎어졌다. 하는 수 없이 공판장에 내놓을 생각이었지만 예상 수취가격은 터무니없었다. 고심 끝에 SNS에 취청오이의 재배과정과 이런저런 사정을 이야기하면서 소비자들의 공감을 얻었고 전량 직거래로 판매했다. 다행히 농가 수취가격은 공판장보다 높았으며, 소비자들은 시중가격보다 저렴하게 오이를 구매할 수 있었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이 오이농가가 10년 동안 인터넷 판매를 해오면서 소비자들과 맺어온 관계 기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생산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취가격을 받고 판매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농업인들 스스로 판로를 확보하기 위한 움직임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대로변에 직접 농산물을 가지고 나와 판매하거나, 인터넷을 이용한 직거래 등 수단과 방법은 다양해지고 있다.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가공, 브랜드화와 수출까지도 모두 그 목적은 다양한 판로를 확보함으로써 잉여생산물을 줄여보자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각 기관이나 부서가 생겨나고 활동하지만, 그 영역이 한계적인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많은 시·군의 농업기술센터가 농산물 가공 교육을 진행하고 가공 시설을 만들어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농업인들에게 실적으로 이익이 생길 수 있는 단계인 ‘판매’까지 나서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지자체나 국가 기관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많은 농업인들이 손쉽게 ‘가공’의 영역까지 도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판매는 농업인들의 몫이다. 생각해보면 가공도 농업인들이 나서서 해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농업인들의 기본적인 역할은 어디까지나 우수 농산물의 생산이다. 시대와 상황이 변함에 따라서 그 역할과 위치가 변할 수는 있겠지만, 지금 상황으로 보면 농업인은 생산부터 가공, 유통까지의 모든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래야 충분한 수익을 얻을 수 있다. 농업인에게 너무 많은 역할을 요구하는 것이 아닐까.

가공이나 브랜드화를 통해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면 농업인들 입장에서도 좋다. 다양한 지원 제도가 뒷받침되면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크게 본다면 오히려 농업인들이 해야 할 일들만 많아졌다. 판로확보를 위한 지원보다도 어떤 문제 때문에 판로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근본적 문제의 해결책 마련이 더 시급하다.

우리 농업을 지키기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은 농업인들이 마음 놓고 농업에 종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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