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규제의 양면성과 합리적 검역규제를 위한 제언
[기고]규제의 양면성과 합리적 검역규제를 위한 제언
  • 농업정보신문
  • 승인 2015.07.20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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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림축산검역본부 식물검역부 위험관리과 김흥두

김흥두 사무관 (농림축산검역본부 식물검역부 위험관리과)

사회가 있는 곳에 반드시 있기 마련인 법이란 무엇일까? 도덕이라는 규범과는 어떠한 차이가 있을까? “남의 물건을 훔치면 안된다.”, “약속은 지켜야 한다.”라는 것은 도덕규범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형법, 민법의 법에도 포함되어 있는 법규범이기도 하다.

19세기 독일의 공법학자 옐리네크는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다.”라고 하였다. 법이라는 것이 인간의 도리나 바람직한 행동기준이라 할 수 있는 도덕에 그 근원을 두고 있지만, 그 도덕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이고 최소한의 것을 추출한 것이 법이라는 것이다. 법이 왜 중요하고 왜 우리가 그 법을 지킬 필요성이 있는지에 대한 이유가 옐리네크의 말에 함축되어 있는 듯하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수업료도 받지 않고 젊은이들에게 웅변술과 수사학을 가르친 일 밖에 없었지만, 아테네 신을 숭배하지 않고 젊은이들에게 불손한 것을 가르쳤다는 죄명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후 “악법도 법이다.”라면서 독배를 마셨다.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신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법적 안정성에 대한 그의 법적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민주주의 국가의 근간인 법치, 그 법치가 이루어지려면 기본적으로 법적인 안정성이 중요하고, 그런 점에서 법이 다소의 결함을 가진다 하더라도 일단 법은 준수되는 것이 필요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이전에, 입법 과정에서부터 입법안이 공익에 부합하는지, 목적의 정당성을 가지는지, 피해의 최소성 원칙이나 법익의 균형성 원칙에는 위배되지 않는지, 정의의 원칙에는 부합하는지 등을 면밀히 검토하여 법이 법으로서의 정당성을 갖추도록 하는 일일 것이다. 각종 이익집단이나 압력단체, 가진 자 등의 입법로비에 의해 불합리한 법이 생겨날 가능성이 큰 오늘날의 입법 환경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

법은 그 유형을 나누어 보면, 사회복지나 특허같이 국민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수익적인 법과,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제한하고 의무를 부과하는, 가령 검역이나 환경규제, 토지규제와 같은 침익적인 법으로 나눌 수 있다. 그 중 침익적인 법에 대해 우리는 바꾸어 말해 행정규제라고 하거나 규제법이라 부른다.

현대사회가 발전하고 복잡다단해지면서 침익적 성격의 규제에 대해 여러 가지 말들이 많다. 한편에서는 규제로 인해 경제활성화가 되지 않는다며 규제가 마치 사회적 공적이라도 되는 듯 규제철폐 만능적 주장을 하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에서는 규제가 너무 풀려, 그것도 대기업 등 힘있는 자의 편에 선 규제완화로 인해 각종 사고의 발생은 물론, 경제적 약자들의 입지를 약화시켜 사회적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행정규제 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규제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는 동식물검역에 있어서의 규제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동식물검역은 관련 국제조약인 세계동물보건기구(OIE)의 육상동물위생규약과 국제식물보호기구(IPPC)의 국제식물보호협약, 그리고 WTO/SPS협정에 따라 세계 각국이 공히 수행하고 있는 국제적인 규제업무로서, 우리의 농업․축산업 보호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규제라 할 수 있지만, 이 또한 지나치지 않게, 필요최소한의 합리적 정당성을 갖는 규제가 되도록 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동식물검역이 참다운, 바람직한 규제의 모습이 되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검역당국의 정책입안자들이 규제를 신설, 강화 또는 완화할 때 고려해야 할 사항을 헌법학적, 행정법학적 측면에서 살펴본다면 다음 몇 가지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수단의 적합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어떠한 조치(행정규제)를 도입하고자 하는 경우 그 조치가 의도하는 효과를 달성할 수 있는 경우에 한해서만 도입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 가령, 어떠한 수입식물에서 발견된 규제병해충(규제되는 병해충)에 대해 소독효과가 거의 없는 소독약제로 소독하게 한 후 합격조치를 하게 한다면, 그 조치는 병해충 사멸이라는 당초 의도한 효과를 달성할 수 없다는 면에서 불필요한 규제가 되고 말 것이라는 것이다.

둘째, 수단의 피해최소성과 필요성에 대한 고려다. 어떠한 조치는 그 조치보다 피해를 더 적게 주는 다른 어떤 수단이 없는 경우에 한해서만 그 조치가 필요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어떠한 규제해충에 대해 비용이 비교적 적게 드는 소독처리에 의해 국내유입을 방지할 수 있음에도 해당 화물을 폐기 또는 반송토록 하여 더 큰 경제적인 피해를 주게 한다면 필요이상의 규제가 되기 때문이다.

셋째, 수단의 상당성과 법익균형성을 고려해야 한다. 어떠한 조치는 공익상 필요와 권리․자유 침해 사이에 적정한 비례관계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어떠한 조치의 효과가 그리 높지 않거나 반드시 필요하지 않아 공익적 필요의 당위성이 없는데도 그 조치로 인해 소요될 수 있는 비용이 과다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국내에 분포하고 있는 병해충과 동일한 종(種)의 병해충이어서 검역규제의 효과(공익적 필요성)가 거의 없는데도 외래병해충 유입의 방지를 위해 필요하다며 그 병해충이 발견된 화물에 대해 소독․폐기 등의 검역처분을 하게 한다면 그 조치는 법익균형성 측면에서 타당성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넷째, 규제를 완화하고자 하는 경우 그 규제완화가 미칠 영향에 대해 충분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 현행 행정규제기본법의 규제영향분석에서는 신설․강화되는 규제에 대해서만 그 영향을 분석토록 하고 있지만, 그와는 반대적인 측면의 규제완화에 대해서도 그 영향을 분석토록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규제완화가 국민의 안전을 침해한다거나, 농업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의 생산․경제기반을 약화시켜 농업보호라는 공익을 침해하는 단초가 되게 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한 몇 가지 고려사항 외에도 검역규제가 규제다운 규제가 되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검역에 있어 필수불가결적인 병해충위험분석이라는 평가 도구다. 병해충위험분석이란 외국의 어떤 병해충이 우리나라로 유입될 가능성이 어느 정도 되는지, 유입 후 정착․확산가능성과 경제적 중요성은 어느 정도 되는지 등에 대해 생물학적,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심층 분석을 하는 일이다.

관련 국제조약에서는 세계 각국이 동식물검역을 할 때에 어떠한 조치이든 병해충위험분석에 기초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내에서의 규제에서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규제를 할 때는 최소한 필요한 범위 내에서, 합리적, 과학적인 근거를 갖고 하도록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규제의 적정성에 관한 맥은 하나로 통하는 듯하다.

그런데 검역규제에 있어 병해충위험분석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앞에서 언급한 정책입안 시의 헌법학적, 행정법학적 고려사항들도 어디까지나 충실한 병해충위험분석의 결과가 바탕이 될 때, 그러한 전제 하에서만 그 빛을 발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동식물검역에 있어서의 병해충위험분석 조직․인력은 충분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 기반이 취약한 상태라 할 수 있다. 앞으로 국내규제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서나 국제적 검역규제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서라도 병해충위험분석 강화를 위한 조직․인력의 확충은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

또 한편, 좋은 정책, 좋은 규제가 나오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공정하고도 균형잡힌 사고방식이 아닐까 생각된다. 어떤 사안에서든 존재하기 마련인, 이해(利害)관계의 두 대립면에 있어, 그 중 어느 한 면에 발을 딛고 서기보다는, 두 대립면의 중간지점인 경계면에 서서 해당 사안을 사심없이 있는 그대로 보고 판단할 수 있는, 공평무사적 공직자의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기존의 개념이나 이념에 지배당하지 말고 세상을 보이는 대로 보면서 자연의 이치대로 현실에 맞게 합리적으로 판단하라는 노자의 무위자연 사상이 필요한 것이다.

과유불급이라고 했다. 일반 행정규제에 있어서나 검역규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 생각된다. 규제가 필요이상으로 강화되거나 합리적인 이유없이 완화․철폐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규제가 규제다운 모습, 공익적 정당성을 갖춘 모습이 되도록 하는 일과, 공익적 가치가 높은 규제가 완화․철폐되지 않도록 하는 일, 그것은 곧 우리가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할, 우리의 삶의 터전을 평화로운 터전으로 지켜내는 일이다.

규제를 강화할 수도, 완화․폐지할 수도 있는 정책입안자, 공직자들의 공명정대하고도 균형잡힌 의식, 민주적 입법의식이 요구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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